문서의 임의 삭제는 제재 대상으로, 문서를 삭제하려면 삭제 토론을 진행해야 합니다. 문서 보기문서 삭제토론 아우구스토 피노체트 (문단 편집) ==== 외교정책 ==== 피노체트 본인이 친미, 친서방 성향이라 서방과는 우호적인 관계를 유지했다. 특히 [[미국]]의 지원으로 집권한 만큼 집권기간 동안 미국과 우호적인 관계를 유지했다. 물론 근본이 쿠데타 독재정권이다 보니 로널드 레이건 미국 대통령도 임기 후반기 갈수록 피노체트와 사이가 서먹해지긴 했다. 다른 중남미 국가들은 민주국가로 향해가고 있었는데 독재국가 칠레를 무조건적으로 지원해주긴 난감했던 것도 사실이었다. [[영국]]과도 사이가 나쁘지 않았으나 이게 되레 치명타가 되기도 하는데, [[아르헨티나]]와 영국간 [[포클랜드 전쟁]]이 발발하자 영국에 [[칠레]]의 [[영공]]을 개방하는 실수를 저지른 것. 말이야 영공 개방이지만 당시 남미 대 유럽의 전쟁으로 인식하고 있던 대부분의 남미 국가에게는 제대로 된 [[역적]], [[팀킬]]로 보일만했다. 결국 칠레는 전쟁을 일으킨 아르헨티나는 물론이고 아르헨티나의 영구 우방국인 [[우루과이]], 그리고 안 그래도 칠레와 사이가 나쁘던 [[볼리비아]]와 [[페루]] 기타 [[브라질]], [[콜롬비아]], [[파라과이]] 등 남미 국가들에게 격렬한 항의를 당하고 오랜기간 칠레를 남미의 [[왕따]] 국가로 전락시켰다. 사실 엄밀히 말해, [[포클랜드 전쟁]] 당시만 놓고 보면 아르헨티나를 지지해 준 나라는 페루뿐이었고 다른 남미 국가들은 별로 아르헨티나를 지지하진 않았다. 다만 이것과는 별개로 [[칠레]] 영공 개방 행위로 인해 전쟁이 남미 대륙 전체로 확대되고 남미 전체가 전쟁에 휘말릴 수도 있는 문제는 있었고, 남미 국가들이 항의했던 것도 그런 문제였던 측면이 컸다. 결국 가만히 있음 중간이라도 갔을텐데 괜히 남의 나라 전쟁에 숟가락 얹었다 욕만 먹은 셈. 90년대 이후 [[칠레]] 민주 정권에서는 포클랜드 영유권 문제에 있어선 아르헨티나를 지지해 오고 있으며, 칠레와 아르헨티나의 외교 관계도 우호적인 관계로 개선되었다고 한다. 하지만 볼리비아와의 관계는 여전히 좋지 않은 모양.[* 사실 이는 [[태평양 전쟁(남아메리카)|태평양 전쟁]]의 영향인데, 이 전쟁으로 인해 볼리비아는 해안과 접하는 자국 영토를 잃고 내륙국으로 전락했기 때문이다.] [[소련]]과는 매우 적대적인 관계를 유지했다. 1973년 9월 22일부로 칠레와 소련은 국교를 단절했고, 피노체트가 물러나는 1990년 3월 11일까지 외교관계가 없었다. 소련은 당시 칠레 정부를 파시스트라고 비난했다. 피노체트 역시 비교적 친서방이던 [[루마니아]]와 [[중화인민공화국]][* 칠레는 [[1971년]] 아옌데 정권시절 중화인민공화국을 승인하고 [[대만]]과 단교하였으나 피노체트 집권기인 [[1975년]] [[산티아고]]에 대만 대표부가 설치되었고 [[1988년]]에 [[타이베이]]에 칠레 경제 문화대표부가 설치되어 비공식교류가 빈번하게 되었다.]을 제외한 모든 공산권 국가와의 관계를 단절해버렸다. 집권 기간 동안 내한은 단 한 번도 하지 않았다. 사실 현지 시간으로 1982년 12월 15일에 [[김상협]] 국무총리가 칠레를 방문해 피노체트에게 방한을 요청했고, 피노체트는 이를 승낙했지만 성사되지 못했다고 한다.저장 버튼을 클릭하면 당신이 기여한 내용을 CC-BY-NC-SA 2.0 KR으로 배포하고,기여한 문서에 대한 하이퍼링크나 URL을 이용하여 저작자 표시를 하는 것으로 충분하다는 데 동의하는 것입니다.이 동의는 철회할 수 없습니다.캡챠저장미리보기